[오피니언] 스피치는 곧 커뮤니케이션이다.
기자 : 관리자 날짜 : 2014-05-23 (금) 22:49



스피치는 곧 커뮤니케이션이다.

스티브 잡스의 프리젠테이션을 기억하는가?
오른손이 한 일은 왼손도 알아야 한다.


글. 정예림 성신여대, 홍익대 강사

 
2011년 10월 5일. 애플 공동 설립자이자 전 최고경영자(CEO)인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난 날이었다. 필자는 잡스 체제의 아이폰, 아이팟, 아이패드를 만나볼 수 없다는 아쉬움보다, 그의 신제품 프리젠테이션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에 더 큰 애석함을 느꼈다. 그만큼 스티브 잡스의 프리젠테이션은 인상적이었고, 흥미로웠으며, 강력했다. ‘스티브 잡스의 프리젠테이션’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몇 가지가 있을 것이다. 검정색 터틀넥 티셔츠, 청바지, 그리고 즐겨 신던 운동화, 간단한 숫자나 단어로만 이루어진 단순한 화면, 자연스러움. 아니, CEO가 신제품을 소개하는데 포멀한 정장수트와 구두가 아닌 캐쥬얼 차림이라니? 설상가상으로 운동화는 웬 말인가? 대학 시절부터 프리젠테이션을 트레이닝 받아왔던 필자의 경우, 정장차림은 프리젠테이션의 기본이라 익혀왔으며 간혹 캐쥬얼 차림의 발표자들이 무참히 공격당하는 모습을 지켜봐왔다.

스티브 잡스의 프리젠테이션은 달랐다. 그의 ‘혁신’ 아이디어는 스피치에도 고스란히 적용되었다. ‘다르게 생각하라(Think different)!’를 늘 외치던 그가 아니었던가. 스티브잡스는 그렇게 그만의 프리젠테이션 세계를 구축하였으며, 수많은 팬(fan)을 만들어내고 열광하게 하였다. 더 중요한 점은 그의 신제품 프리젠테이션이 수 많은 제품의 판매량과 직결되었다는 점이다. 애플은 2007년 아이폰 첫 출시 이후 매년 업그레이드한 신제품을 내놓았지만 단 한 번도 가격을 올리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플의 영업이익률은 한때 40%를 넘는 등 대체로 30%을 상회하였는데, 판매대수의 확대 속도가 소폭 감소한 이익률을 만회하고도 남았기 때문이다. ‘아이폰만의 깔끔하고 유려한 디자인’, ‘사용자를 고려한 지속적인 혁신’이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였겠지만, ‘스티브 잡스의 프리젠테이션’과의 3박자가 없었다면 브랜드로열티를 제고하는데 한계가 있었을 것이다. 스티브 잡스는 ‘왜 열정을 가지고 프리젠테이션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과 답을 동시에 던졌다.

재미있는 점은 스티브 잡스의 프리젠테이션이 처음부터 훌륭하진 않았다는 것이다. 1984년 매킨토시가 출시되었을 때 스티브 잡스는 연설대에 의지하여 노트를 보며 읽었다. 당연히 청중과의 커뮤니케이션은 일어날 수 없었다. 그 후로 10여년이 지난 1996년, 그는 연설대로부터 독립할 수 있었고, 무대를 자유롭게 다니며 청중과 커뮤니케이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부자연스러운 자세와 손동작은 여전했다. 이후 2000년부터 잡스의 프리젠테이션은 완벽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대화하듯 자연스러운 몸짓과 말투, 군더더기 없는 내용구성, 시선처리, 청중과의 호흡, 가끔 던지는 농담까지. 스티브잡스는 어떻게 프리젠테이션을 잘하게 된 것일까? 

프리젠테이션의 방법을 운운하기 위해서는 먼저 스피치 커뮤니케이션의 본질을 알아야 한다. 과연 스피치란 무엇이며, 스피치는 왜 중요한가? ‘스피치’라고 하면 대부분 ‘공식적인 연설’부터 떠올린다. 그러나 스피치의 형태는 매우 다양하며, 상황과 목적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로 분류할 수 있다. 스피치의 상황은 크게 4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발표(예)대중연설, 프리젠테이션, 강의’, ‘진행(예)회의주재, 토론사회’, ‘참여(예)회의참여, 대담참여’, ‘대화(예)면접, 사담’가 이에 해당한다. 또한 목적에 따라 스피치의 종류를 크게 4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대상을 설득하기 위한 스피치(예)정치연설, 세일즈’, ‘정보제공을 하기 위한 스피치(예) 강의, 보고’, ‘유흥을 고취시키기 위한 스피치(예) 코믹연설, 쇼 사회’, ‘격려하기 위한 스피치(예)격려사, 축사 등’가 그것이다. 정리하자면 작게는 매일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대화부터 크게는 대중연설까지 모두 ‘스피치’의 범주 안에 속하는 것이다.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라는 성경의 유명한 한 구절이 있다. 이 명언처럼 말을 아끼는 것이 미덕인 시절이 있었다. 묵묵하게 제 자리를 지키다보면 언젠가 빛을 발할 수 있다고 믿었다. 과거 지역공동체 중심 사회에서는 가능한 이야기였다. 만나는 사람이 적고, 생활 반경이 좁다보니 근거리에서 접촉할 기회가 많아 자연스럽게 행동으로 능력을 보여줄 수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이 구절을 그대로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정보화시대로 접어들면서 생활 반경이 크게 확대되었고, 접촉하는 대상자 수가 급격하게 증가하였다. 때문에 정보화 사회에서는 지역공동체 중심 사회에 비해 상대적으로 본인의 행동이 관찰 당할 기회가 줄어들게 되었다. 또한 SNS, 스마트폰 등 다양한 매체의 발달로 개별적 접촉 보다는 안방에 앉아서 상대방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는 일이 빈번해졌기 때문에 본인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가 점차 더 중요해지고 있다. 정보화 사회에서는 말이 곧 능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 ‘말하기’가 생각처럼 쉽지 않다는 것이다. 신입사원 면접, 아이디어 프리젠테이션, 토론이나 쇼 등의 진행은 말할 것도 없고 일상에서 일어나는 대화조차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특히 주체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것에 대한 트레이닝이 부족한 한국사회에서는 더더욱 어렵다. 필자는 스피치 수업을 할 때 ‘아무거나!’라는 단어를 지양할 것을 권유한다. 동료들과 어떤 점심 식사를 하는 것이 좋을지 의견을 나누는 것도 스피치의 일부이다. 동료가 어떤 메뉴가 좋을지에 대해 물어본다면 적어도 ‘아무거나!’라는 말은 하지 말라는 것이다. ‘아무거나!’를 외친 사람이 특정 메뉴에 대한 거부감을 나타내는 상황을 종종 볼 수 있다. ‘아무거나 괜찮다고 했지만, 그 메뉴는 아니야.’ 라는 논리는 모순 그 자체 아닌가. 위 상황을 정리하자면 ‘난 아무거나 괜찮은 건 아니야’가 맞는 대답이고, 이 대답보다는 ‘난 스파게티가 좋아. 난 설렁탕이 좋아.’등의 대답이 훨씬 더 명료하고 친절하다. 이렇게 소신답변을 하고나면 ‘상대방이 싫다고 하면 어떻게 하지?’ 라는 걱정이 곧 따른다. 하지만 이 부분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상대방도 좋다고 한다면 금상첨화, 상대방이 다른 메뉴를 원한다면 2가지 방안이 있다. 다양한 근거를 바탕으로 왜 스파게티를 먹어야 하는지, 왜 설렁탕을 먹어야 하는지 설득하는 것. 혹은 상대방의 메뉴를 선택하는 것이다. 스피치는 하루아침에 잘 되는 것이 아니다. 평상시에 본인 의견을 조리있게 전달하는 방법을 연습해야 공식적인 스피치도 잘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스티브잡스의 신제품 프리젠테이션과 같은 공식적인 스피치는 어떻게 해야 잘 할 수 있을까? 답은 ‘리허설’과 ‘불안증 극복’이다. 스티브 잡스가 완벽한 프리젠터로 거듭난 데에는 부단한 노력과 연습이 숨어 있었다. 편한 옷차림을 하고 나왔다고, 자연스럽게 대화체로 말한다고 해서 그가 평소처럼 대화하듯이 스피치를 진행했다고 생각한다면 엄청난 오산이다. 잘 고안된 시각자료, 물 흐르듯이 흘러가는 문장은 기본이고 소파에 편하게 앉아 아이패드를 만지고 있는 동작까지 수차례 연습을 거쳐 완성된 것이다. 과연 어떤 방식으로 리허설을 해야 잘 했다고 소문이 날까? 파레토의 법칙으로 잘 알려진 80:20의 법칙을 추천한다. ‘80%는 문장 그대로 외우기, 20%는 라이브로 남겨두기’이다. 스피치를 준비할 때는 먼저 개요서를 작성해야 한다. 스피치 주제, 목적, 서론, 본론, 결론이 명시되어 있는 개요서를 작성하는 작업은 건물의 뼈대를 세우는 작업과 같다. 튼튼하면 튼튼할수록 좋다. 서론, 본론, 결론 등에서는 어떠한 이야기를 할 지 구체적인 문장 혹은 키워드로 적어두고 이를 암기하는 것이다. 이 부분이 완벽히 준비되면 전하고자 하는 내용은 빠짐없이 전달할 수 있기 때문에 스피치 목표의 80%는 달성할 수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스피치는 암기력 테스트가 아니다. 만약 우리가 외운 바를 줄줄 외우고 스피치를 종료할 요량이라면, 차라리 유인물을 배부하고 청중들이 편한 시간에 자유롭게 읽어보도록 두는 것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필자가 ‘스피치는 커뮤니케이션이다’라는 주장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스피치의 목적은 기본적으로 상대방과의 소통에 근간을 두어야 한다. 심지어 화자(話者) 혼자서 몇 시간 동안 스피치를 해야 하는 강의 상황에서도 커뮤니케이션은 일어나고 있다. 고개 끄덕임, 갸우뚱거림, 집중하는 눈빛, 인상 찌푸림 등 여러 가지 비언어적인 수단으로 청중들은 화자와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이때 화자는 청중들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감지하여 대응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부분이 스피치의 20%를 라이브로 남겨야 하는 이유이다.

리허설을 아무리 열심히 한 사람이라도 막상 연단에 오르면 눈앞이 캄캄해지거나 하늘이 노래지는 경험을 한다. ‘나는 앞에 나와서 이야기하는 걸 잘 못해. 혹시 망치면 어떻게 하지?’라는 막연한 불안감 때문이다. 재미있는 점은 이 불안감은 스피치를 시작하기 전, 대부분의 화자들이 경험하는 일반적인 감정이라는 것이다. 다만, 청중들이 보기에 그 감정이 얼마나 가시적으로 드러났느냐에 따라서 ‘저 사람은 앞에 나와서도 이야기 잘하는 사람, 저 사람은 앞에 나오면 떠는 사람’으로 분류되는 것이다. 태어나면서부터 스피치를 잘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부단한 연습을 통해, 성공할 것이라는 자기 암시를 통해 좀 더 나은 스피치를 구사할 뿐이다. 특히 불안감 자체가 불안감을 증폭시키는 상황은 막아야 한다. 긍정적인 불안감은 스피치 준비를 더 열심히 하게 하는 원동력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오히려 약이 될 수 있다. 내가 왜 불안한지 찬찬히 분석하여 부족한 부분을 메꾸면 되는 것이다. 하지만 막연한 불안함은 스피치의 실패로 이어진다. ‘이 스피치가 내 인생에서 크게 중요하지 않으며, 최악의 경우 망쳐도 상관없다’라는 배짱이 필요하다. 정말 스피치를 망치라는 것이 아니라, 너무 잘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버리라는 것이다. 스티브 잡스도 프리젠테이션을 유창하게 하는데 20여년이 걸렸다. 부단한 리허설과 자기 자신을 믿는 것, 이는 훌륭한 스피치의 첫걸음이자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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